릴케의 시입니다. 저는 1월 어느 날에 필리핀으로 짧지만 선교를 다녀왔습니다. 그곳은 참 완연한 여름 날씨이더군요. 고작 4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갔을 뿐인데, 긴소매 옷에 패딩까지 껴입어야 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반팔과 반바지도 더운 세상으로 도착했습니다. 이전에 유럽과 캐나다를 갔다 올 때는, 위도는 차이가 크게 나지만, 경도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계절은 같은 계절이었는데, 이번에는 계절이 달라지니 그 느낌이 새로웠습니다.
우리는, 아니 적어도 저는 제가 지금 보고 느끼고 실재하는 이 세상이 ‘지구’라는 개념의 전부입니다. 멀리 아는 사람이 있는 지방까지가 제가 인식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. 근데 여기 선교 현장에서 제가 목도하고 있는 이 장소와 아이들의 웃음과 몸짓, 그리고 우리와 함께 만들어내는 상호작용도 실재였습니다. 신은 진정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너머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사실입니다. 그리고 그 너머 속의 피조물과도 늘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.
화자에게도 이런 인식이 있는 듯합니다. ‘지금 세계의 어느 곳’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신과 연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. 엄밀히 말하면서 저 너머의 누군가의 울음이, 웃음이, 걸음이, 죽음이 저와는 무슨 상관이겠습니까. 그러나 그것을 나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. 그게 기도의 시작인 듯 합니다.
아직도 끝나지 않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. 이 추위 속 우리의 시선이 미쳐 닿지 못하는 곳에 떨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는 것. 저기 장례식 어느 곳에서 슬픔에 잠겨 있을 이들에게 마냥 차갑지 않는 시선을 두는 것. 그래서 여기 세상은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 땅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것.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, 모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인식.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이 내 슬픔과 아픔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. 감각을 초월해 느껴지는 엄숙한 공간과 엄숙한 시간.